‘붙박이 옷장’을 갖고 싶지 않은 건 아니야

결혼할 적에 집이 좁아서 안방에 옷장을 설치하지 못했었다. 솔직히 집이 좁아서였는지 돈이 부족해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 게 어디 있나? 자취생활의 연장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전에 쓰던 스탠드 형 옷걸이와 새로 장만한 봉 옷걸이를 예쁘게 설치하곤, ‘와... 유럽식 인테리어 같다.’며 깔깔댔던 기억이다. 제 작년에 집을 좀 넓혀서 이사를 하곤 처음으로 안방 옷장을 설치했다. 아내가 말했다.

- 나라고 해서 ‘붙박이 옷장’을 갖고 싶지 않은 건 아니야.

저것은 가구가 아니고, 설치 아닌가? 이다음에 떠나게 된다면 들고 갈 수 없는 것 아닌가, 저게 얼마짜린데?! 와 같은 후진 생각을 해서도, 말을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아내의 비장한 눈빛은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나는 어깨에 조금 힘을 주며,

- 큰 애가 열 살이니까, 10년 만에 처음 가져보는군. 옷장.

안방 한쪽 벽을 모두 채운 붙박이 옷장은 여닫이문이 아니고, 미닫이문이다. 건축공학과 나온 나는 이 말이 익숙하지만, 아내는 꼭 슬라이딩도어라고 표현했다. 며칠 전에 ‘슬라이딩도어’를 열고 코트를 꺼내는 아내의 모습을 본 일곱 살 둘째가 놀라며 말했다.

- 어? 그 안에 옷이 들어있네?

나와 아내와 큰애는 잠깐 놀랬다. 그리고 금세 알아챘다. 여기에 이사 온 지 1년이 넘었지만, 둘째는 옷장 문이 열리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었다. 혹은 보았으나, 주의 깊게 인식하지 않았거나. 붙박이 옷장의 색깔과 벽지의 색깔이 큰 차이도 없어서 그런지 둘째는,

- 거기 벽인 줄 알았어!

깔깔 웃고 싶었지만, 우선은 안내가 필요해보였다.

- 이건... 아니, ‘여긴’ 옷장인데, 이 안에 옷이 들어있어. 엄청 많이 들어있어.

아내도 안내를 거들었다.

- 엉, 옷이 엄청 많이 들어있지만, 입을 옷이 없어.

아니, 그럼 저 수많은 옷들은 옷이 아닌가? 섬유뭉치들인가? 와 같은 후진 생각을 해서도, 말을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은 아내의 비장한 눈빛들로 틈틈이 교육받아왔다. 그러나 우리의 친절한 안내와는 무관한, 둘째의 비장한 눈빛을 나는 알아보았다.

- 이담에 사촌 오빠들이나 지홍이 오빠 놀러 와서 숨바꼭질 할 적에 저기 숨어야지롱.

세상에 만나서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보면 눈빛의 말도 알아보게 되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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