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가사도우미 수입 논쟁에서 ‘타산지석’ 조명하는 영화

 

“일로 일로” 포스터 이미지(by 와이드 릴리즈㈜)
“일로 일로” 포스터 이미지(by 와이드 릴리즈㈜)



민생위기와 근시안 해법의 파괴적 앙상블 앞에서

나라는 부강한데 시민은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간다. 통계 지표상으론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니,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날로 높아진다니 등등 연말연시마다 미디어에선 호들갑을 떨어댄다. 하지만 정작 이를 보는 시민들의 표정은 냉소 그 자체다. 온갖 실적 근거를 보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달리는 게 맞다. 온라인 곳곳에선 평균치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출처 불명의 수치 기준이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실제 현실에서 본인 포함 주변에서 평균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대체 온라인의 평균소득은 누가 벌어들이는 걸까?

한쪽에선 일확천금을 노리며 안정된 저축 대신, 코인이다 주식선물거래다 마치 혼자만 비밀을 아는 듯 공유한다. 하지만 그걸로 돈을 벌었다는 이들의 자랑과 폭삭 망했다는 체념 중 누가 더 많은지는 자명하다. 극소수 성공사례는 요란하게 법석을 떨지만, 절대다수 손해는 그저 개인의 모자람으로 치부되곤 한다. 광풍은 그렇게 사람들을 현혹하며 확대 재생산된다. ‘투기’를 보고 ‘투기’라 부르지 못하는 세상이다.

그렇게 실물경제와 동떨어진 양적 성장은 물가 상승으로 직결되고, 그 결과 연초 제사용 사과가 개당 1만 원을 호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의 비만율이 잘 먹어서가 아니라 못 먹어서라는 평가가 한국으로 상륙할 판이다. 신선과일이나 채소를 매일 먹을 수 있다는 게 엄청난 사치가 되어가는 지경이니 말이다. 그런 가운데 정작 제대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복지병’ 때문에, OECD 평균에 비하면 여전히 과도한 노동시간이나 턱없이 부족한 노동인권 문제 때문에, 경제가 위기에 처한다며 온갖 필수예산은 삭감 일로다. 저출산 때문에 한민족이 사라지고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면서 여전히 교육과 돌봄 예산 확보에는 인색하다. 외형상으로는 거대한 액수의 재원이 투자되지만 정작 제대로 효과를 보기 위한 방향성과 적재적소 투입은 합격점과는 거리가 멀다.

근시안적 대책으로 뭐든 거창하게 이름은 붙이길 좋아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미래를 내다보고 설계하는 것보다는 단기 여론조사용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돌봄을 공교육이 떠맡아 맞벌이 부모의 부담을 줄인다며 ‘00학교’ 같은 정책을 자화자찬하지만, 현장의 준비는 부족하고, 실행해야 할 책임 주체들은 울상이다. 모두가 불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해당사자를 설득하고 합의를 만들기 위한 노력 대신 외부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정부의 시도는 해괴한 지경에 도달하곤 한다. 저출산과 돌봄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금까지 금지되었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사례 모범으로 정부는 싱가포르와 홍콩 사례를 제시한다. 하지만 정작 조금만 관심 있게 경우를 살펴본다면, 무수히 많은 문제점은 쉽게 발견된다. 그저 영화 한 편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일로 일로” 스틸 이미지(by 와이드 릴리즈㈜)
“일로 일로” 스틸 이미지(by 와이드 릴리즈㈜)

사고뭉치 주인공과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악연이 시작되다

싱가포르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10살 남자아이 ‘자러’가 살고 있다. 아빠는 영업직, 엄마는 인사관리직으로 회사원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으뜸가는 경제 대국 싱가포르답게 ‘자러’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다. 자신을 돌봐주던 할아버지도 얼마 전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부모님이 아들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관심 있게 돌봐줄 짬은 잘 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자러’는 학교에서도 말썽을 부리고, 제멋대로 성질을 부리기 일쑤인 사고뭉치가 되어간다. 게다가 엄마는 그의 동생이 될 둘째를 임신한 상태다. 딱 미운 짓 할 나이에 걸맞게 ‘자러’는 정서불안 행태를 보이곤 한다.

‘자러’의 엄마는 만삭이 되자 회사와 가사를 감당하기 어려워졌지만, 한창 바쁜 회사 일을 줄이기도 어렵다. 그래서 부모님은 논의 끝에 집안일을 돌볼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기로 한다. 형편이 썩 부유한 편은 아닌 터라 조건을 고심해 물색한 끝에 필리핀 출신 ‘테레사’가 채용된다. ‘자러’와 ‘테레사’는 첫 대면을 갖지만 모든 것에 배배 꼬여 있던 ‘자러’는 괜한 심술을 부리며 ‘테레사’를 괴롭히고 거짓말도 일삼는다. 하지만 둘은 같은 방에서 기거해야 한다. 그야말로 ‘불편한 동거’ 그 자체다. 낯선 존재인 ‘테레사’가 아니라도 이미 할아버지를 잃고 마음 붙일 곳 없던 ‘자러’는 그냥 세상 모든 게 못마땅할 따름이다. 그런 감정이 가정부로 고용된 처지인 ‘테레사’에게 모조리 쏟아부어진다.

하지만 부대낄 수밖에 없는 둘은 관계를 개선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신세. ‘테레사’는 여기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자러’는 아무리 성질을 부리고 갑질을 저질러 봐야 외로움에 휩싸인 10살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갖 사건 사고 가운데에서 비 온 뒤 땅 굳어진다고 둘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이해해간다. ‘테레사’에겐 고향에 두고 온 채 한 살도 안 된 자식 같은 이, ‘자러’에겐 자상하게 돌봐주던 할아버지를 대신할 존재가 된 셈이다. 사고를 친 ‘자러’를 감싸고자 고자질 대신에 수난을 감수하는 ‘테레사’에게서 ‘자러’는 엄마를 보고, 사고뭉치이긴 하지만 그 또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감정이란 걸 간파한 ‘테레사’에게 ‘자러’는 자식 대신이다.

그렇게 둘이 조금씩 교감을 쌓아가지만 바람 잘 날이 없다. ‘자러’의 아빠는 영업사원에서 실적 문제로 자의 반 타의 반 직장을 그만둔 채 사실을 숨기고 임시직 경비로 전직한다. 스트레스가 쌓인 그는 끊었던 담배에 손을 댄다. 현관에서 새벽에 몰래 담배를 피우던 흔적 때문에 애꿎은 ‘테레사’가 흡연자라는 누명을 쓰기도 한다. ‘자러’의 엄마는 만삭으로도 회사 일에 매진하는데, 하필 그의 직책 때문에 어려워진 회사 사정으로 정리해고 대상자를 분류하고 통보하는 고역을 맡았다. 그 때문에 당장 휴식이 필요한데도 일을 줄이거나 그만둘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신 피로로 인한 스트레스는 날로 쌓일 수밖에 없다. 부부관계는 갈수록 악화 일로를 걷고 가족의 살림 형편은 나빠져만 간다. ‘테레사’는 겨우 마음 붙이고 열심히 돈을 벌어보려 하지만, 고용주인 ‘자러’ 가족의 경제 여건이 추락하면서 겨우 친해진 ‘자러’와 ‘테레사’의 관계는 위기에 봉착한다.

 

“일로 일로” 스틸 이미지(by 와이드 릴리즈㈜)
“일로 일로” 스틸 이미지(by 와이드 릴리즈㈜)

섬세하게 구축된 캐릭터로 고찰하는 내밀한 감정선

 

이 영화의 탁월한 점은 주요 등장인물인 ‘자러’ 가족과 어느 날 그들의 시공간에 이주해 온 가사도우미 ‘테레사’의 4인 4색 선명하고 구체적인 캐릭터 설정에 있다. 우선 ‘자러’는 초반부에는 그야말로 미운 짓만 골라서 저지르고 다니는 악역 캐릭터에 가깝다. 학교생활기록부는 엉망진창이고 교우 관계도 좋다고 볼 수 없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거나 제멋대로 행동하기 일쑤다. 부모님에겐 그나마 눈치를 보는 시늉이라도 하던 ‘자러’는 텃세를 그야말로 제대로 부리며 고용된 가사노동자인 ‘테레사’에게 화풀이를 일삼는다. 그 강도가 만만찮기에 영화 초반에 관객에게 미운털 톡톡하게 박힐 법하다. 하지만 그런 ‘자러’의 행동이 모두 동정받을 순 없겠지만, 바쁜 부모님 대신에 정서적 교감을 나눠왔던 할아버지의 별세가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건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자러’가 기묘하게 집착하는 행동이 있는데, 일간지에서 늘 경마복권 지면을 오려서 공들여 스크랩하는 것이다. 아마 할아버지가 늘 해오던 행위를 추억 삼아 이어받은 것일 테다.

‘테레사’는 28살, 해외로 나와 가사도우미 이주노동자로 일하는 게 처음이다. 그는 믿음 안 가는 무능한 남편 대신에 살림을 짊어져야 한다. 이제 돌이 될락 말락 한 아이를 맡기고 멀리 타향에 와서 불편함과 차별을 견디며 일해야 한다. ‘자러’랑 좀 친해지고 나서야 호구조사하듯 서로 대화를 나누다 어린아이를 두고 왔다는 사실에 ‘자러’가 충격을 받을 정도다. 비싼 전화카드 아끼지 않고 써가며 고향에서 자식을 맡긴 친척과 통화하지만 그렇다고 근심 걱정은 가실 리 없다. ‘자러’가 동급생을 폭행하게 되는 배경은 그런 ‘테레사’의 복잡한 상황을 직시하게 만든다. 테레사가 등하교를 돕는 ‘자러’를 동급생 소년이 호강한다며 놀리는데, 그 내용이 고약하긴 하지만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너에게 잘해주는 건 부모님이 월급을 지급하기 때문이란 것. ‘테레사’에게서 바쁘고 예민한 엄마 대신 정서적 결핍을 채우는 ‘자러’에겐 물론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

‘자러’의 엄마는 복잡한 심경의 소유자다. 그는 ① 위태로운 중산층 가정을 건사하기 위한 경제적 책임감, ② 자기가 낳은 자식과 교감하지 못한 채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역할을 빼앗기는 것만 같은 불안감, ③ 출산을 앞둔 가운데 제대로 안정을 취하지 못하는 임산부의 불안감, ④ 정리해고가 휩쓰는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노동자. 그는 영화 내내 쫓기는 삶을 살아간다. 남편을 구박하고, 아들에겐 늘 명령하고, 가정부를 하녀 부리듯 한다. ‘엄마’의 위상이 흔들리자 ‘테레사’를 향한 간헐적 적개심이 표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천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본인의 일상이 너무나 시달리기 때문이다. 통찰력 있고 기본적으로 온정적이지만 가정부가 오기 전부터 부부관계는 원만치 못하고 생활조건을 건사하는 데 역부족인 상황이다. 산전 우울증이 역력함에도 기댈 곳이 없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자러’의 아빠는 ‘고개 숙인 가장’이다. 10년 넘게 영업사원으로 성실히 일해 왔지만 나날이 실적은 나빠지고 주변의 눈총도 무시할 수 없다. 시장 상황이 하락 일로인 게 문제의 근본이지만, 결국 책임은 그에게 전가되기에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자괴감에 휩싸인다. 그 결과를 만회하려다 더 큰 실수를 저지르고 일을 그만둔 채 임시직을 전전한다. 가족들은 그런 타는 속도 모른 채 박대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끊었던 담배를 피우고 위장 생활을 어떻게든 이어 가보려 하지만 거짓말은 오래 함께 살아온 가족들에게 금방 들통날 수밖에 없다. 경제적 곤란을 타개하기 위해 이것저것 궁리도 해 보지만, 아내는 물론 처가 식구들에게도 신뢰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 역시 성실하고 착한 심성의 소유자다. 결국엔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전형적인 ‘악역’이라 할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일로 일로” 스틸 이미지(by 와이드 릴리즈㈜)
“일로 일로” 스틸 이미지(by 와이드 릴리즈㈜)

IMF 경제 위기 속 허물어지는 중산층의 데자뷔

생생한 인물 설정과 사실관계 묘사에는 비결이 있다. 바로 감독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손수 써 내려간 시나리오 덕분이다. 영문 제목인 <일로 일로>는 바로 자신을 아들처럼 대해주던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의 출신 동네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 사회적 배경인, 주인공의 부모를 힘들게 하던 경제난은 바로 1997년이라는 시간대 설정이다. 이쯤 되면 감이 확 올 법하다. 바로 우리 현대사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기억되는, IMF 구제금융 시기와 같은 시간이 영화 속 설정으로 자리한 것이다.

우리는 당시 경제 불황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라 이해하기 쉽지만, 실은 동남아시아 국가들 또한 이 시기에 고통을 심하게 겪었다. 당시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가 전 세계를 휩쓸다시피 했던 시절이다. 초국적 투기자본 작전세력이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폭리를 위해 몇몇 나라의 국민경제를 파괴하려 했다는 가설이 나돌 정도로 실물경제와 유리된 급전직하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싱가포르와 인접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초국적 금융자본과 노골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며 서양 투기자본의 음모라고 성토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가족이 겪는 경제위기는 어느새 사반세기가 넘게 지난 당시의 기억을 고스란히 선보인다.

‘자러’의 부모님은 어떻게든 그들이 누리던 중산층의 삶을 지속하려 애를 쓴다. 이들이 뭐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안정된 직장과 작은 아파트, 그리고 오래 탄 자가용 등의 재산을 가진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정규직으로 명절에 친척들에게 용돈을 드리거나, 자식에게 생일날 비싼 선물을 해주는 수준이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정도의 삶을 사수하기 힘들기만 하다. 그런 속도 모르고 이번에도 닭튀김이냐고 투정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 마음에 평범한 이들의 속은 별로 어렵지 않게 이입될 테다. 어떻게든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자 그들이 택하는 건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험적 투자다. ‘자러’의 아빠는 주식에 여유자금을 몽땅 집어넣었다가 큰 손해를 본다. 영업일도 불황 때문에 통 풀리지 않는다. 주변에서 대만 버블티 사업을 동업하자고 한다. 아내에게 이야기해 보지만, 말 그대로 ‘국물도 없’다.

정작 ‘자러’의 엄마도 흔들리긴 매한가지. 그는 우연히 주운 전단에서 빤한 내용에 불과한 강사의 별 알맹이도 없는 성공론 강좌를 비싼 돈을 주고 덜컥 신청한다. 하지만 기껏 신청한 강좌는 허위로 수강생을 모집해 수강료를 들고 나르는 사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부부는 동시에 허탈해진다. 그들에게 남은 자존심이던 자가주택과 자가용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그 결과는 ‘자러’에겐 정이 들어가던 ‘테레사’와의 생이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경제적 위기는 가족 간의 불화와 함께 정들었던 사람들의 원하지 않는 작별,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할 이주노동자의 좌절로 부정적 파급력을 확장해 간다. 그렇게 영화는 감독의 성장기 추억 속 또 다른 이산가족의 경험을 화면에 생생하게 재현한다.

 

“일로 일로” 스틸 이미지(by 와이드 릴리즈㈜)
“일로 일로” 스틸 이미지(by 와이드 릴리즈㈜)

 

1997년 싱가포르 vs 2024년 한국의 상황

영화는 완성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극영화로선 드물게 동남아시아 가사도우미 문제에 대한 세심한 묘사와 설정이 돋보이는 작업이다. 지난해부터 노골적으로 돌봄 문제의 대안으로 정부와 여당에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 도입 관련 대번에 그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반면교사로 손색이 없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가족이 가사도우미를 채용하려 하는 이유와 조건이 거의 그대로 현재 국내 논의 상황에도 들어맞는다.

‘자러’의 엄마는 중개업체와 통화하면서 언어 소통과 채용 경비를 따진다. 싱가포르 현지어나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가격은 감당 가능한 수준에다 문화적으로 이질감도 적어야 한다. 싱가포르의 고용주는 필리핀을 선호한다고 명확히 밝힌다. 이주노동자 송출사업이 국가적으로 중요하기에 경력자가 많고 국가적으로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어적으로 영어 구사율이 높아 의사소통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게다가 가톨릭 신앙이 주류이기 때문에 문화적인 이질감도 적다. 정 구할 수 없다면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가 줄줄이 언급된다. 내국인에 비해 저렴한 고용조건도 한몫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게 해당 항목이다. 시간당 최저임금 관련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을 배제한 게 싱가포르와 홍콩 모델인 것이다. 언론에서 공공연히 등장하는, 100만 원 정도로 고용할 수 있어야 가계 부담이 적다는 논리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면 당연히 200/300만 원이 최소치가 될 테니 말이다.

‘자러’의 가족은 급작스럽게 가사도우미를 채용했기 때문에 당장 기거할 방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자러’와 ‘테레사’는 한 방에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해야만 했다. 현재 국내 논의에선 저임금 논의와 함께 이들이 직장 근처의 고시원이나 원룸을 얻어 기거하도록 한다는데, 너무 낮은 고용조건 때문에 정부 당국이 기대했던 인력송출 대상국인 필리핀 정부가 난색을 표명할 정도다. 게다가 최저임금 적용 예외를 상정하면서도 이것저것 돌봄 관련 자격요건과 한국어 구사까지 높은 수준을 설정해 가사와 돌봄을 동시에 소화하라는 허들 때문에 시범사업 인력조차 수급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대체 얼마나 졸속으로 사업을 추진하는지 안 봐도 분명한 수준이다.

 

“식모방” 설계도면 이미지(by 한국주택공사)
“식모방” 설계도면 이미지(by 한국주택공사)
용산구 ‘한강맨션’ 아파트 전용면적 101㎡, 167㎡ 평면도(by 대한주택공사)
용산구 ‘한강맨션’ 아파트 전용면적 101㎡, 167㎡ 평면도(by 대한주택공사)

과거 초창기 30평대 아파트 단지에는 현관이나 부엌 옆에 작은방이 딸려 있었다. 통칭 ‘식모방’이라 불리던 공간이다. 1960/1970년대에 걸쳐 중산층 주거용으로 계획된 고급 아파트엔 반드시 구획되던 시설이다. 이 쪽방에서 기거하며 새우잠을 자던 ‘식모’는 새마을운동과 병행된 극단적 ‘이촌-향도’ 현상으로 도시에 떠밀려온 농촌 여성들의 (섬유공장과 버스의 차장과 함께) 주요 일자리가 되었다. 이들이 겪는 애환을 배경으로 깔고 그들이 추락해 유흥시설로 들어선 상황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묘사한 게 과거 한국영화의 장르 중 하나이던 ‘호스티스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였다. 그 밀폐된 공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얼마나 많은 노동 착취와 학대가 벌어졌는가는 (굳이 연구자료를 뒤지지 않더라도) 다양한 대중문화 속에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식모방’은 1980년대 이후 아파트가 중산층을 넘어 서민에게도 보급되면서 공간 부족과 경제성장으로 인해 식모로 일할 인력이 모자라면서 사라져갔다. 대신에 자투리 공간은 다용도실이나 옷방으로 변형되었다. 그렇게 1970년 전후만 해도 새로 짓는 아파트의 절반 이상에 설치되던 공간이 수명을 다한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채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 가난한 농촌 출신 내국인 여성에서 이제 동남아시아의 빈국 여성으로 대상을 바꿔 ‘식모’가 부활할 판이다. 만약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실현된다면, 제일 먼저 ‘식모방’은 아파트단지 신축에 반영될 게 확실하다. 저출산과 돌봄 문제를 내부 착취에서 외부 착취로 해소하려는 정부와 기득권 집단의 임기응변에 급급한 짧은 시야로 추진되는 정책은 그렇게 시간을 초월해 슬그머니 돌아올 참이다. 영화 속 중산층의 위기와 이주노동자 가사도우미의 비극은 그렇게 타산지석으로 현재에 전이된다.

 


작품 정보

 

일로 일로 Ilo Ilo

2013, 싱가폴, 드라마

2015.04.02. 개봉, 99분, 전체관람가

감독 안소니 첸

주연 첸 티안 웬, 엔젤리 바야니, 여얀얀, 코 지아 럴

수입 ㈜미디어데이

배급 와이드 릴리즈㈜

키워드

#일로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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